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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짧은 독후감

by Jason J 2017. 8. 4.

 소설을 읽기 시작하려면,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이 적잖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소설의 첫 문장 이전부터 이미 그 세상에 살고 있던 등장인물들은, 내가 속한 세상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저마다의 인간관계, 직업, 취미,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막 그들을 옅보기 시작한 나로서는 첫 문장 이전까지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약간의 인내심을 가지고 글자를 읽어나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내의 시간은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의 양과 비례한다.

 그러한 탐색의 시간은 보통 책의 1장이 끝나기 전, 정말 강력한 책의 경우에는 두어 장만에 끝나기 마련이다. 여기서 문제는, 요즈음 적지 않은 책들이 내가 꽤나 많은 시간을 참아 줄거라고 생각 하는 모양이다. 아리송한 복선들만 잔뜩 던져놓은 채로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넘어가거나, 독자의 상상력을 무시하는듯 쓸데없는 풍경묘사에 열을 올린다든지. 가벼운 마음으로(그 책이 충분히 재미있을 거라는 보장을 얻지 못한 상태로)책을 펼친 나 같은 경우는 책을 이내 닫아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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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와 같은 이유로 좀처럼 마음에 드는 책을 찾지 못했던 와중에, 이 책은 한 페이지가 채 넘어가기도 전에 나를 온전히 흡수해버렸다. 10년 넘게 아무와도 소통이나 관계를 갖지 않고 집에만 박혀 사는 '빌리'였기 때문에, 그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친구와 직장동료의 이름 외우느라 힘쓰지 않아도 됐다.

 매일 아파트 현관에 나와 앉아 있는 아주 어린 소녀 '그레이스'를 베란다 너머로 발견한 빌리는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를 훔쳐보다 엉겁결에 대화를 하게된다. 우연히 시작된 그들의 관계를 시발점으로 책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이웃'이라는 인간관계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약물 중독인 엄마를 두었더라도 해맑고 똑똑하기까지 한 그레이스를 마지막까지 지켜본다면, 정말 이 친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거창한 반전 같은 거 없이,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닌 사람 대 사람의 사랑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이 책을 덮고 나면 마치, 방금 데운 따끈한 우유 한 잔을 마신 느낌, 다 비운 잔에서 아직 가시지 않은 온기를 두 손으로 잡고있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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